어릴 적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대보름에는 한겨울 한파가 무색할 정도로 온 동네에 따스한 온기가 맴돌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날은 가족, 친지들과 함께 뜨뜻한 아랫목에 모여 앉아 부럼을 깨물며 새해의 무사태평(無事泰平)과 만사형통(萬事亨通)을 기원하였다. 추수가 끝난 논에서는 해충(害蟲)을 죽이기 위해 짚더미로 만든 달집과 논두렁·밭두렁의 마른 풀을 태웠다. 이는 그 해의 풍년을 바라는 농부의 간절한 마음이자 그 시절의 소소한 놀이였다.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관행적으로 행했던 이러한 행동들이 오늘날 미세먼지 가득한 회색빛 하늘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에 당혹스럽고, 어릴 적 누군가와 함께했던 추억들마저 훼손되는 듯해 씁쓸함을 더한다.
미세먼지(PM, Particulate Matter)는 입자지름이 10마이크로미터(㎛) 보다 작은 것(PM10)과 2.5마이크로미터(㎛)보다 작은 것(PM2.5)으로 구분한다. PM2.5는 머리카락 약 1/20~1/30의 매우 작은 크기로 초미세먼지로 불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3년 초미세먼지를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하고, 2014년 한 해에 초미세먼지로 인해 기대수명보다 일찍 사망하는 사람이 700만명에 이른다고 발표했을 정도로 이 ‘작은 존재’의 무서움을 인류에게 경고한 바 있다.
환경부 ‘2017년 국가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조사결과’를 보면 전라북도 초미세먼지 배출량은 전국 배출량의 3.9%를 차지하며, 사업장 및 도로 등의 비산먼지가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농업부산물 연소에 의한 배출이 29.4%로 이는 전국평균 13%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특히, 작물 추수가 끝나는 11월, 농사가 시작되는 3월, 보리 수확기 직후인 6월에 농업부산물 연소 지표성분이 전국평균보다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018년 전북대 지구환경시스템연구소의 ‘2017~2018년 전주시 대기 중 초미세먼지 농도 및 화학적 특성’ 연구결과를 보면 전주시 초미세먼지에서 검출된 탄소 성분은 농업부산물 연소가 초미세먼지 발생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들 모두 농업지역이 많은 우리 지역에서 농업부산물 관리가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결과다.
그간 우리는 논·밭을 태우면 해충과 잡초가 없어져 그 해 농사에 도움이 된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농촌진흥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논·밭에는 농사에 도움이 되는 익충(益蟲)이 해충보다 더 많이(약 75~85%) 서식하고 있어 논·밭을 태우면 해충은 약 11% 방제되는 것에 반해 익충은 약 89%가 감소하여 해충 방제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짚이나 겨, 깻대 같은 농업부산물을 태우기보다는 최대한 활용하여 자연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0년에 ‘영농잔재물 적정 수거·처리 지침’을 만들어 재활용을 유도해 나가고 있다. 농업부산물은 파쇄 후 해당 경작지에 살포하여 풋거름 등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시·군의 농기계 임대사업소에 보유 중인 파쇄기와 시·군 농업기술센터, 농협, 새마을중앙회 등의 협조를 받아 재활용할 수 있다.
전북지방환경청도 농업부산물 주요 배출장소, 방치 지역, 노천 불법소각 빈번 지역을 중점관리지역으로 선정하여 관리 중이다. 지자체·농업단체·민간감시원과 함께 이들 지역의 농업인 등을 대상으로 한 홍보활동과 불법 소각행위에 대한 감시활동을 지난해 11월부터 시작해 올해 3월까지 지속적으로 추진한다.
우리 지역의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노력도 중요하지만 지역주민, 즉 우리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관행처럼 이루어지던 농업부산물 ‘노천소각’을 근절해야 우리 지역의 대기오염 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우리 고장의 푸른 하늘을 보전하고, 후대에 잘 물려주는 것이 어릴 적 달집을 태우며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한 해가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형통하는 소망의 첫걸음일지도 모른다.